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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우린 부서지면서 우리가 영혼을 갖고 있었단 것을 보여준 거지 <소년이 온다> 4장 '쇠와 피' “So we shattered, and at the same time we let everyone see it—see that we had souls.”Chapter 4, Steel and Blood, from Human Acts by Han 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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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ntent48591 2025. 9. 3.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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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 표지사진 출판사 창비

 

< 책 속으로>

4장 쇠와 피

 

모나미 검정볼펜은,

조사실에 들어가면 변함없이 준비되어 있는 첫 순서였습니다.

내 몸이 내 것이 아니라는 걸 일단 분명히 해 두려는 것 같았습니다.

내 삶의 어떤 것도 내 뜻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허용되는 건 오직 미칠 듯한 통증, 오줌똥을 지리도록 끔찍한 통증이라는 것을.

(105)

 

나는 모릅니다.

왜 김진수는 죽었고,

그와 한조가 되어 함께 밥을 먹었던 나는 아직 살아있는지.

김진수가 더 고통을 받았을까요.

아니요, 나도 충분히 고통받았습니다.

김진수가 더 잠을 못잤을까요.

아니요, 나도 잠을 못 잡니다. 

하루도 깊이 못 잡니다.

숨이 붙어 있는 한 계속 그럴 겁니다.

(108)

 

제주 서귀포시 외돌개 근처 해안에서 바라본 범섬 2025년 8월

 

우리 조의 절반 이상이 미성년자였습니다.

장전을 하고 방아쇠를 당기면 정말 총알이 나간다는 게 믿기지 않아,

도청 앞마당에 나가 밤하늘을 향해 한발 쏘아보고 돌아온 야학생도 있었습니다.

스무살이 되지 않은 사람들은 집으로 보낸다는 지도부의 지침을 거부한 건 바로 그들 자신이었습니다.

그들의 의지가 너무 강했기 때문에,

만17세까지만이라도 억지로 돌려보내는 일에 긴 언쟁과 설득이 필요했습니다.

(112)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군인들이 쏘아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리어커에 실어 앞세우고,

수십만의 사람들과 함께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닷없이 발견한 내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

더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룰 것 같았던

생생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나는 느꼈습니다.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114)

 

계단을 올라온 군인들이 어둠속에서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 조의 누구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습니다.

방아쇠를 당기면 사람이 죽는다는 걸 알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린 쏠 수 없는 총을 나눠 가진 아이들이었던 겁니다.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날 군인들이 지급받은 탄환이 모두 팔십만발이었다는 것을 .

그때 그 도시의 인구가 사십만이었습니다.

그 도시의 모든 사람들의 몸에 두발씩 죽음알 박아넣을 수 있는 탄환이 지급되었던 겁니다.

문제가 생기면 그렇게 하라는 명령이 있었을 거라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117)

 

제주 서귀포 법환포구 외돌개 구간 해안 산책로 2025년 8월

 

 

순간 깨달았습니다.

그들이 원한 게 무엇이었는지.

우리를 굶기고 고문하면서 그들이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너희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애국가를 부른 게 얼마나 웃기는 일이었는지,

우리가 깨닫게 해주겠다.

냄새를 풍기는 더러운 몸, 상처가 문드러지는 몸, 굶주진 짐승같은 몸뚱어린들이 너희들이라는 걸,

우리가 증명해주겠다.

(119)

 

그날 아침 새로 받은, 세제 냄새가 풍기는 깨끗한 푸른색 수의를 입고서 

나는 즉석 총살이란 말을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정말 닥쳐올 총살을 기다리듯 숨을 죽였습니다.

죽음은 새 수의같이 서늘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때 생각했습니다.

지나간 여름이 삶이었다면, 피고름과 땀으로 얼룩진 몸뚱이가 삶이었다면,

아무리 신음해도 흐르지 않던 일초들이,

치욕적인 허기 속에서 쉰 콩나물을 씹던 순간들이 삶이었다면,

죽음은 그 모든 걸 한번에 지우는 깨끗한 붓질 같은 것이리라고.

(122)

 

제주 서귀포시 외돌개 근처 해안 2025년 8월

 

우리 한잔 더 하죠.

모직코트 깃을 올려세운 직장인들이 창밖으로 바삐 걸어 출근할 무렵까지 우리는 함께 마셨습니다.

아무것도 잊게 해주지 않는 투명하고 독한 술을,

차가운 유리잔에 붓고 다시 부었습니다.

(127)

 

그 후 우리는 이따금 만나 함께 술을 마셨습니다.

서로가 자격증 시험에 떨어지고, 교통사고를 내고, 빚이 생기고,

다치거나 병을 얻고, 정 많고 서글서글한 여자를 만나 잠시 모든 고통이 끝났다고 믿고,

그러나 자신의 손으로 모은 걸 무너뜨려 다시 혼자가 되는 비슷한 경로를

거울 속 일그러진 얼굴처럼 지켜보는 사이 십년이 흘렀습니다. 

하루하루의 불면과 악몽, 하루하루의 진통제와 수면유도제 속에서 우리는 더이상 젊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누구도 우리를 위해 염려하거나 눈물 흘리지 않았습니다.

우리 자신조차 우리를 경멸했습니다.

우리들의 몸속에 그 여름이 조사실이 있었습니다.

검정색 모나미 볼펜이 있었습니다.

하얗게 드러난 손가락뼈가 있었습니다.

흐느끼며 애원하고 구걸하는 낯익은 음성이 있었습니다.

(126)

 

그러니까 형, 영혼이란 건 아무것도 아닌 건가.아니, 그건 무슨 유리 같은 건가.

유리는 투명하고 깨지기 쉽지.그게 유리의 본성이지.

그러니까 유리로 만든 물건은 조심해서 다뤄야 하는 거지.

금이 가거나 부서지면 못쓰게 되니까, 버려야 하니까.

예전에 우린 깨지지 않은 유리를 갖고 있었지.그게 유린지 뭔지 확인도 안해본, 단단하고 투명한 진짜였지.

그러니까 우린, 부서지면서 우리가 영혼을 갖고 있었단 걸 보여준 거지.

진짜 유리로 만들어진 인간이었단 걸 증명한 거야.

(130)

 

제주 서귀포시 외돌개 법환동 인근 해안 산책로 2025년 8

 

다섯명의 어린 학생들이 이층에서 두 손을 들고 내려온 것은 그때였습니다.

계엄군이 대낮같이 조명탄을 밝히며 기관총을 난사하기 시작했을 때

내가 소회의실 캐비닛에 숨으라고 명령했던 네명의 고등학생과,

소파에서 김진수와 짦은 실라이를 벌였던 중학생이었습니다.

더이상 총소리가 들리지 않자 그들은 김진수의 말대로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러 내려온 것이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러니까 이 사진에서 이 아이들이 나란히 누워 있는 건,

이렇게 가지런히 옮겨 놓은 게 아닙니다.

한줄로 아이들이 걸어오고 있었던 겁니다.

우리가 시킨 대로 두 팔을 들고, 줄을 맞춰 걸어오고 있었던 겁니다.

(133)

 

어떤 기억은 아물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아니라,오히려 그 기억만 남기고 다른 모든 것이 서서히 마모됩니다.

색 전구가 하나씩 나가듯 세계가 어두워집니다.

나 역시 안전한 사람이 아니란 걸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내가 선생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은,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134)

 

특별히 잔인하게 행동한 군인들에게는 상부에서 몇십만원씩 포상금이 내려왔다고 했습니다.

동료 중 하나가 그에게 말했다고 했습니다.'뭐가 문제냐? 맷값을 주면서 사람을 패라는데, 안 팰 이유가 없지 않아?'

(134)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이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

(135)

 

 

제주 서귀포 외돌개 해안 2025년 8월

 

 

<책 내용>

<소년이 온다> 4장 '검은 피'는 그기 취조실에서 검정볼펜으로 고문을 받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는 한 달 전 김진수의 부고를 들었다.

계엄군이 들어와 그들이 붙잡혀 끌려간 후 거기서 그는 김진수와 한 조가 되었다.

김진수는 잡힐 당시 대학 신입생이었고 그는 스물세살의 교대 복학생이었다.

그곳엔 소년 영재도 있었다.

살아남은 자들은 온갖 고문을 당했다.

군인들은 이듬해 성탄절까지 생존자들을 특사로 석방했다.

교도소를 나온지 이태가 지나고 그는 김진수를 해장국집에서 우연히 다시 만났다.

그들은 학교로 돌아가지 못했고 가족의 신세를 지며 생계를 이어갔다.

그리고 십년이 흘렀다.

어느날 그는 김진수에게서 소년 영재가 정신병원에 들어갔고 앞으로 못나올 거란 얘기를 들었다.

김진수는 결국 어느 날 홀연히 유서와 사진 한장을 남기고 죽는다.

그가 남긴 사진은 '그날', 일렬로 서서 항복하러 내려오는 고등학생 네명과 중학생 한명을

계엄군이 기관총으로 난사해 그 시신이 나란히 누워있는 모습의 사진이었다. 

Book Summary

Chapter 4 “Steel and Blood” in Human Acts begins with a scene where the narrator is tortured with a black Monami pen in the interrogation room.

He had heard about Kim Jin-su’s death a month earlier.

After the martial law troops entered the city and they were arrested and dragged away, he was grouped with Kim Jin-su.

Kim Jin-su had just entered university at the time of his arrest, and the narrator was a 23-year-old returning student at a teacher’s college.

There was also a boy named Yeong-jae.

Those who survived were subjected to all kinds of torture.

The soldiers eventually released them with a special pardon by Christmas of the following year.

About two years after being released from prison, the narrator happened to run into Kim Jin-su at a hangover soup restaurant.

They hadn’t been able to return to school and were making ends meet by relying on their families.

Then ten years passed.

One day, Kim Jin-su told him that Yeong-jae had been sent to a psychiatric hospital and wouldn’t be able to come out again.

Eventually, Kim Jin-su died, leaving behind a suicide note and a single photograph.

The photo showed that “that day”, four high school students and one middle school student had walked down in line to surrender,
but were gunned down by soldiers with machine guns—their bodies lay side by side in the photo.

 

<감상>

나는 <소년이 온다> 4장 쇠와 피를 읽으면서 내내 어떤 흥분상태에 있었던 것 같다.

생존자들의 분노와 억울함이란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글의 마지막 두세 장을 읽을 때는 급기야 눈물을 쏟았다.

'그'가 나란히 누운 고등학생과 중학생의 시신 사진을 설명하는 대목에서였다.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었던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역사가

다시금 살아있는 이야기와 아픔으로 내 마음속에 새겨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소년이 온다> 5.18의 아픔을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부디 '그 소년'이 오기를...

Personal Reflection 

While reading Chapter 4, “Steel and Blood,” I felt like I was in a constant state of agitation.

I could clearly feel the anger and resentment of the survivors.

And when I reached the final two or three pages, I ended up bursting into tears.

It was during the part where the narrator describes the photograph of the high school and middle school students lying side by side.

The history of May 18, which had felt so far away from me until now,
suddenly became a living story and a real pain, deeply etched in my heart.

I hope that, for everyone who remembers the pain of May 18,
that boy will come to them, too.

 

 

제주 서귀포시 외돌개 근처 해안에서 바라본 범섬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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