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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당신이 나를 이끌고 가기를 바랍니다-한강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 6장과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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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ntent48591 2025. 9. 5.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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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 창비출판 책 표지

 

<책 속으로>

6장

꽃 핀 쪽으로 

 

지금 들어가면 못 나옵니다.

저 안에는 죽을 각오가 된 사람들만 남았습니다.

느이 작은형이 알겠다고, 일단 들어가게만 해달라고 언성을 높일 적에 내가 말을 막았다.

그 이그가 기회를 봐서 제 발로 나올라는 것이여... 분명히 나한테 약속을 했단게

사방이 너무 캄캄해서 내게 그렇게 말을 했다이. 금방이라도 어둠속에서 군인들이 나타날 것 같아서 그렇게 말을 했다이.

이라다가 남은 아들 가장 잃어버릴 것 같아서 그렇게 말을 했다이.

그렇게 너를 영영 잃어버렸다이

(185)

제주 이호테우 해변 마을 2025년 6월

 

 

그저 겨울이 지나간 게 봄이 오드마는, 봄이 오면 늘 그랬드키 나는 다시 미치고, 여름이면 지쳐서 시름시름 앓다가 가을에 겨우 숨을 쉬었다이. 그러다 겨울에는 삭신이 얼었다이. 아무리 무더운 여름이 다시 와도 땀이 안 나도록, 뼛속까지 심장까지 차가워졌다이.

(190)

제주 이호테우 해변가에 핀 꽃 2025년 6월

 

 

  

네 중학교 학생증에서 사진만 오려갖고 지갑 속에 넣어 놨다이. 낮이나 밤이나 텅 빈 집이지마는 아무도 찾아올 일 없는 새벽에, 하얀 습자지로 여러번 접어 싸놓은 네 얼굴을 펼쳐본다이. 아무도 엿들을 사람이 없지마는 가만가만 부른다이.... 동호야.

 

엄마, 저쪽으로 가아. 기왕이면 햇빛 있는 데로, 못 이기는 척 나는 한없이 네 손에 끌려 걸어갔제. 엄마아, 저기 밝은 데는 꽃도 많이 폈네.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로.

(192)

 

 

<책 내용>

동호는 세형제 중에 막내다.

큰형이 열한살이었을 때 동호가 태어났다.

열다섯살 동호는 계엄군이 들어온다는 마지막 날에 도청에 남았다.

그 날 엄마는 둘째 형과 함께 너(동호)를 찾으러 도청 앞으로 갔다.

사람들이 못들어가게 막았는데 작은형이 들어가게 해달라고 언성을 높이자 엄마가 작은형을 말렸다.

그러다가 둘째형도 잃어버릴 것 같은 두려움에 엄마는 둘째형의 손을 잡고 돌아섰다.

그렇게 너를 영영 잃어버렸다.

 

 

<읽은 후>

엄마는 믿었을 것이다. 네가 꼭 살아 돌아오리라고.

엄마는 두려웠을 것이다. 둘째 아이도 함께 잃을 것 같아서.

엄마는  절망했을 것이다. 네가 끝내 살아돌아오지 않아서.

엄마는 원망했을 것이다. 그것이 자기 책임인 것 같아서

 

 

에필로그

눈 덮인 램프

 

내가 몰래 그 책을 펼친 것은, 어른들이 언제나처럼 부엌에 모여 앉아 아홉시 뉴스를 보고 있던 밤이었다. 마지막 장까지 책장을 넘겨, 총검으로 깊게 내리그어 으깨어진 여자애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을 기억한다. 거기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던 내 안의 연한 부분이 소리없이 깨어졌다.

(199)

 

 

처음 혼자서 망월동을 찾았던 스무살의 겨울을 시작한다. 묘지 언덕의 무덤들 사이를 걸으며 나는 그를 찾고 있었다. 그때까지 성은 몰랐다. 어른들의 대화에서 엿들은 이름만 기억하고 있었다. 막내삼촌의 이름과 비슷해 얼른 외워졌던, 만 열다섯살의 동호.

(205)

 

 

 

그 경험은 방사능 피폭과 비슷해요, 라고 고문 생존자가 말하는 인터뷰를 읽었다. 뼈와 근육에 침착된 방사성 물질이 수십년간 몸속에 머무르며 염색체를 변형시킨다. 세포를 암으로 만들어 생명을 공격한다. 피폭된 자가 죽는다 해도, 몸을 태워 뼈만 남긴다 해도 그 물질이 사라지지 않는다.

2009년 1월 새벽, 용산에서 망루가 불타는 영상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불쑥 중얼거렸던 것을 기억한다. 저건 광주잖아.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 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 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

(207)

 

 

이제 당신이 나를 이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 ,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가기를 바랍니다.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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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MB

 

 

 

<책 내용>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열한살이었다.

아버지가 가르치던 학생네가 중흥동 그집을 샀다는 것을 전부터 알고 있었다.

1980년 5월이후 사람들은 쉬쉬하면서 5월의 흉흉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수배자를 찾기 위해 새벽에 경찰들이 우리 집을 급습한 적도 있다. 이년 뒤 아버지는 참상이 실린 사진집을 집으로 가져와 숨겨놨고 나는 그 책을 몰려 펼쳐보고 깊은 충격을 받는다.

2009년 1월 새벽 용산에서 망루가 불타는 모습에서 1980년 5월 광주를 다시 본다. 

이후 나는 동호의 흔적을 추적한 끝에 1980년 5월 광주의 이야기를 쓴다. 

 

<읽고 난 후>

한강 장편소설인 <소년이 온다>는 에필로그까지 7개의 구슬로 꿰어져 있다. 그 구슬 하나하나가 보물이라면 각각의 영롱함과 깊이가 이루 말할 수 없다. 단순히 감명 그 이상의 울림을 주는 작품이었다.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나는 이 말이 <소년이 온다> 소설 속에 나오는 문장인 줄 알았다. 이 말은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 수상식에서 한 말이라고 한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한밤중에 집에 있는 tv에서 봤다.. 그 소식도 너무 놀라웠지만 노벨문학상 수상식에서 한 한강 작가의 예언과도 같은 말은 우리의 현실 사회에서 바로 실현된 것처럼 보였다. 이것 자체로 하나의 소설같은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소년이 온다>에서 1980년 5월 광주는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소설은 희망을 말하지 않는데 절망이 느껴지지 않는다. 소설은 무겁고 칙칙하고 끔찍한데 밑으로 가라앉지 않고 물결을 타고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

2014년 5월19일에 처음 세상에 나온 책이 십년 후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책'이 되었다.

소년의 영혼은 위대한 작가의 영감에 스며들어 이렇게 오는 것 같다.

 

'어쩌면 한사람씩 오는 게 아닌지도 몰라.

수많은 사람들이 희미하게 번지고 서로 스며들어서,

가볍디가벼운 한 몸이 돼서 오는 건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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