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속으로>
이 세상에 올 때와 마찬가지로 세상을 뜨는 것도 사람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니 견뎌야 합니다.
성숙해져야 합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리어왕> 5막 2장
(7)

<이반 일리치의 죽음>
"여러분." 그가 입을 뗐다.
"이반 일리치가 사망했다는군요."
(29)
'세상에, 사흘 밤낮을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고 나서야 겨우 숨을 거두다니! 사실 언제든, 아니 지금 당장이라도 나한테 똑같이 닥칠 수 있는 일이잖아.' 이런 생각이 들자 순간 그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어찌 된 조화인지 거의 동시에 '이건 이반 일리치에게 일어난 일이지 나한테 일어난 일이 아니야. 나는 이런 일을 겪을 리도 없고 또 나한테 일어날 리도 없어.'라는 지극히 평범한 생각이 그를 안심시키는 것이었다. 그는 또 '침울한 분위기에 눌려서 괜히 쓸데없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야.'
(41)
이반 일리치가 보기에 아내는 정말 아무 이유 없이, 그가 스스로 일컬은 것처럼 아주 고의적으로 기분 좋고 고상한 삶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아내는 이렇다 할 뚜렷한 근거도 없이 그를 질투했고, 자기에게만 신경 써 줄 것을 요구하며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가 하면, 아주 거칠고 상스럽게 나왔다.
(55)
이반 일리치의 삶은 전반적으로 '인생이란 으레 즐겁고 고상해야 한다.'는 자신의 소신대로 그렇게 평탄하게 흘러갔다.
(60)

의사에게 들은 간략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이반 일리치는 현재 자신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결론을 내린 동시에 자신의 상태가 어떠하든지 의사에게는 별 상관이 없는 문제이며, 아마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나자 그의 마음속에 자신을 향한 깊은 연민이 느껴졌다. 또한 생사가 걸린 중대한 문제 앞에서 냉혹할 정도로 무심한 태도를 보이는 의사에게 크나큰 적개심이 일었고, 가슴 아프도록 고통스러운 충격에 휩싸였다. (79)
그는 그러한 인식에 육체적인 고통과 공포심까지 더해진 상태로 매일 밤 힘겹게 잠자리에 들어야 했고, 그마저도 통증 때문에 대부분을 뜬눈으로 보내는 날이 많았다. 아침이 오면 다시 일어나 옷을 차려입고 법원으로 출근해서 말을 하고 서류를 작성해야 했고, 출근을 하지 않으면 스물네 시간을 꼬박 집에서 보내야 했다. 그리고 집에서 보내는 스물네 시간은 매 순간이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그는 파멸의 끝자락에서 그를 이해하고 위로해 주는 사람 하나 없이 홀로 외롭게 견디지 않으면 안 되었다.(88)
그가 두 눈을 부릅뜨고 뚫어져라 어둠을 응시했다. "죽음이라, 정말 죽는 건가. 그런데도 저 사람들 중에서 누구 하나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없다니, 아니, 아예 알고 싶지 않은 거겠지. 나를 딱하게 여기지도 않잖아. 즐기고 노르라고 정신이 없군. (문밖에서 사람들의 노랫소리와 반주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 자기들도 어차피 죽을 건데, 참 태평스럽기도 하단 말이야. 멍청한 것들. 내가 먼저 가고 자기들은 나중에 갈 뿐인데, 그것도 모르고 말이지. 결국 죽는 건 다 마찬가지라고. 그런데도 저렇게 즐거울까, 짐승들!"(94)
'그래, 맞아. 바로 여기에서, 이 커튼을 달다가, 전장에서 당한 것처럼 그렇게 내 목숨이 날아간 거야. 정말일까? 아, 어떻게 이처럼 끔찍하고 어리석은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거지! 말도 안 돼! 그럴 리가 없어. 하지만 사실인걸.'(103)
그의 처지를 이해하고 진심으로 그를 가엾게 여기는 사람은 게라심 한 명뿐이었다. 그래서 이반 일리치는 게라심과 함께 있을 때만 마음이 편했다.(110)
무엇보다 그의 주변 사람들과 그 자신의 거짓이 이반 일리치 생애의 마지막 순간들을 해치는 가장 무서운 독이었다.
(112)
그는 의지할 데 없고 한없이 고독한 자신이 딱한 처지가 서러워 울었고, 사람들의 냉혹함과 하느님의 잔인함 그리고 하느님의 부재가 원망스러워 울었다.
'무엇 때문에 제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 겁니까? 도대체 왜 저를 이런 상황까지 오게 하셨습니까? 무엇 때문에, 도대체 무엇 때문에 저를 이다지도 고통스럽게 하시는 겁니까.....?
(128)

"네가 바라는 게 뭐지? 대체 네가 바라는 게 뭐냐고?" 그가 반복해서 자신에게 물었다. "바라는 것? 더 이상 고통을 겪지 않는 것, 그리고 사는 것."
"사는 것이라고? 어떻게 사는 것을 말하는데?" 영혼의 목소리가 물었다.
"그래, 사는 것, 예점에 살던 것처럼 행복하게 기쁘게."
(129)
결국은 죽음을 향해 열심히 달려온 것이나 마찬가지인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순간, 그때는 기쁨으로 여겨졌던 모든 것들이 이제는 그의 눈앞에서 허망하게 녹아내리면서 아무것도 아닌 하찮은 것으로, 더러운 구역질 나도록 추한 것으로 변해 버렸다.
(130)
뜻하지 않게 찾아온 결혼.....이어진 환멸, 아내의 입 냄새, 성욕, 위선! 생명력이라곤 전혀 없는 직장생활에 열심히 공을 들이면서, 또 돈 걱정을 하면서 일 년이 가고 이 년이 갔고, 또 그렇게 십 년이 흐르고 이십 년이 흘렀다. 늘 똑같은, 그렇고 그런 삶이었다. '난, 내가 조금씩 조금씩 산을 내려오는 것도 모르고 산 정상을 향해 나아간다고 믿고 있었던 거야. 실은 정확히 그만큼씩 내 발밑에서 진짜 삶은 멀어져 가고 있었던 거지....그래, 이제 다 끝났어. 죽는 일만 남은 거야!"
(131)
"그래,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어. 고통, 죽음.....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137)

"이보시오, 의사 양반, 당신이 나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당신 자신이 잘 알고 있잖소. 그러니 나를 가만 내버려 두시오."
"고통을 덜어드릴 수는 있습니다." 의사가 대답했다.
"사실 그것도 제대로 못하고 있잖소. 그러니 나를 그냥 놔두시오."
(139)
그는 그들 안에서 바로 자기 자신의 모습과 자신의 삶의 수단으로 삼았던 모든 것들을 보았다. 그리고 그것들은 모두 잘못된 것이었으며, 그것들은 또한 삶도 죽음도 가려버리는 하나의 거대하고도 무서운 기만이었다는 사실을 그들을 통해 똑똑히 알게 되었다.
(141)

그러자 돌연 모든 것이 그에게 분명해지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그의 안에 꼭 박혀서 그를 괴롭히며 좀처럼 밖으로 나오지 않던 것들이 갑자기 양쪽에서, 이어서 열 방향 그리고 사방에서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그는 가족들이 불쌍했고, 가족들이 마음에 상처를 받지 않도록 뭔가를 해야 했다. 이 모든 고통으로부터 가족들을 해방시키고, 자기 자신도 해방되어야 했다.
'아, 얼마나 좋아, 그리고 얼마나 간단해.' 그는 생각했다. '그런데 통증은?' 그는 의아했다. '어디로 갔지? 어이, 이봐, 통증, 어디에 있나?'
(147)
죽음 대신 빛이 있었다.
(147)
'죽음은 끝났어.' 그는 자신에게 말했다. '죽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
그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하지만 들이마신 숨을 미처 내뱉기도 전에 온몸을 쭉 뻗더니 그대로 숨을 거두었다.
1886년 3월 25일
(148)

<책내용>
1882년 2월 4일 항소법원판사인 이반 일리치가 죽었다.
이반일리치의 사망소식을 접한 그의 동료들은 그의 죽음으로 인해 생길 자신들의 자리이동에 대해서 먼저 생각했고
그의 부인(프라스코비야 표도르브나)은 남편 죽음에 대한 애도보다는 자신이 어떻게 연금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는지에 골몰했다.
이반 일리치는 마흔다섯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아버지는 어렸을 때부터 둘째인 이반 일리치의 재능과 선량함과 사교성을 자랑스러워했고 그 자신도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는 예심판사가 되어 일찌감치 자신의 신분에 맞는 여자와 결혼을 했다.
이반 일리치가 결혼하고 17년이 흘러 그는 자신의 동료들보다 두 단계나 승진을 했고 집을 새로 장만했다.
집을 호화롭게 꾸미고 최상류층 사람들과 어울리며 자신의 생활에 아주 만족하며 지냈다.
'모든 것이 좋았다.'
집 꾸미는 데 열중한 이반 일리치는 주름장식 천을 다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사다리에 올라갔다가
발을 헛디뎌 미끄러지면서 창 손잡이에 옆구리를 세게 부딪히는 일이 있었다.
어느 날 이반 일리치는 입안에 이상한 맛이 돌고 배왼쪽이 거북하고 불편해진 것을 느꼈다.
의사들은 정확한 진단을 감추는 것 같았고 이반일리치 외에 모든 사람들은 다 평온하게 지내는 것 같았다.
예민해진 이반 일리치는 부인인 표도르브나와 싸우기 일쑤였고 통증은 더욱 심해져만 갔다.
의사의 진단에 따라 맹장에 혹이 생긴 것을 알았을 때는 생명을 붙잡기에는 이미 늦은 거였다.
그의 통증은 더욱 심해져 갔고 살은 날이 갈수록 몰라보게 빠져서 누가 봐도 죽음이 그 앞에 다가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반 일리치는 그 앞에서 유일하게 거짓을 말하지 않는 충직한 하인 게라심과 아들 바샤만이 자기를 이해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나머지 사람들에 대해서는 모두 거짓된 모습을 자기에게 보이고 있다고 생각하며 적개심을 가졌다.
그는 맹렬하게 자신의 죽음을 응시했다.
그는 절대적인 외로움 속에서 혼자 죽음과의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부정하고 부정하고 부정해도 자기 앞에 다가온 죽음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는 자신이 진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그것은 '더 이상 고통을 겪지 않는 것, 그리고 사는 것' '예전에 살던 것처럼 행복하게 기쁘게' 사는 것이었다.
이반 일리치는 숨을 거두기 직전 죽음에서 '빛'을 보았다.
그가 거짓이라고 생각했던 그래서 분노했던 타인의 모습들에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리자 자신을 가두고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그 앞에 있는 아내가 자식들이 안쓰러워졌다.
이반 일리치는 '죽음은 끝났어.'라고 자신에게 말하며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책을 읽고 난 후>
톨스토이가 쓴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 줄거리는 그리 복잡한 것이 아니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너무 평범한 한 사람의 평범한 죽음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에 별 감흥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밑줄을 그어놓은 책 내용을 타이핑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이 작품이 점점 더 심오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책을 탁하고 덮었을 때의 느낌과 밑줄 친 문장들을 타이핑하면서 느낀 감정이 너무 많이 달랐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메멘토모리'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이 책은 이반 일리치라는 한 사람이 죽음을 통해 자신을 옭아맨 거짓된 삶에서 벗어나게 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톨스토이에게 죽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톨스토이는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죽음'을 왜곡된 삶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해방구' 같은 것으로 그리고 있다.
우리가 삶 속에서 결코 버리지 못하는 위선과 기만 같은 것들이 죽음 앞에서는 비로소 벗어버릴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죽음을 '빛'이라고 표현한 것이 아닐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것이
'정말 살고 있는 게 아니지 않을까'
'시시각각 쓸데없는 것에 매몰되어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한참 동안 멍하니 하게 된 소설이다.
문 김민기 님의 노래 '봉우리'가 듣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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