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속으로>
1장 뛰어난 퍼커션 연주자는 가장 중요한 음을 치지 않는다
사십 대 중반까지는 '나'라는 1인층으로 주인공을 그려도 나이상의 괴리가 거의 없었어요. 그런데 작가가 점점 오십 대, 육십 대가 되면서 소설 속 삼십 대의 '나'와는 미묘하게 멀어지거든요. 자연스러운 일체감을 잃게 된다고 할까. 그건 아무래도 피할 수 없죠.
(29)
진짜 리얼리티는 리얼리티를 초월한 겁니다. 있는 사실을 리얼하게 쓰기만 해서는 진짜 리얼리티가 되지 않아요. 찔러 넣을 데가 한 단계는 더 있는 리얼리티를 만들어야 해요. 그게 픽션입니다.
(38)
네, 자아 레벨, 지상 의식 레벨에서는 대개 보이스의 호응이 얕아요. 하지만 일단 지하로 내려갔다가 다시 나오면 언뜻 똑같아 보여도 배음의 깊이가 다르죠. 한번 무의식층에 내려갔다 올라온 재료는 전과는 다른 것이 됩니다. 담갔다 건지지 않고 처음 상태 그대로 문장을 만들면 울림이 얕아요. 그러니 제가 이야기, 이야기, 하는 건 요컨대 재료를 담갔다가 건지는 작업입니다. 깊이 담금수록 나중에 밖으로 나오는 것이 달라지죠.
(41)

그래도 날마다 꾸준히 써나가는 거죠. 아, 오늘은 틀렸구나 싶어도 그럼 그만두자 생각하지 않아요. 어쨌거나 정해진 분량을 씁니다.
전체적으로는, 요는 스스로를 믿는 일이죠. 소설을 쓴다기보다, 부엌에서 굴튀김을 하나하나 튀기는 중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좋아요.
(44)
아무튼 어릴 때부터 음악을 열심히 들었고 재즈카페를 칠 년쯤 운영했으니, 악기 연주는 못해도 리듬이나 보이스, 즉흥연주 감각은 제법 몸속 깊숙이 배어 있습니다. 그러니 음악을 연주하는 감각으로 문장을 쓰는 면이 확실히 있는 것 같아요.
(50)
많은 남자는 자신이 무언가를 모른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걸 두려워하는 것 같아요.
남에게 길을 묻는 것도 이상하게 꺼린다거나(웃음)
(52)

지금까지 오랫동안 세상 사람 대부분이 저를 싫어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거든요.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로.
(53)
유명해지는 일에 맞는 사람과 안 맞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단언컨대 전혀 맞지 않고요. 그런 유의 일로 즐거움을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어요.
(54)
... 저는 아주 개인적인 인간이니까...
(63)

거품경제가 붕괴되고, 고베 지진이 일어나고,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나고, 원전 문제가 생겼죠. 전 그런 시련을 통해 일본이 좀 더 세련된 국가로 나아갈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명백하게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그게 재가 위기감을 느낀 이유이고 어떻게든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65)
작가가 되려면 '자신이 이거다 하고 정한 대상과 전면적으로 관계를 맺는 일, 그 코미트먼트의 깊이가 중요하다'는 겁니다.
코미트먼트의 방향성이나 내용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적어도 깊이는 꼭 필요해요. 깊이가 없으면, 나아가 그 깊이를 끝까지 짊어질 담력이 없으면 아무 데도 갈 수 없어요. 나머지는 운입니다.
(70)

2장 지하 2층에서 일어나는 일
쓰는 시간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오히려 길어요. 서파가 앞바다에서 파도를 기다리는 것과 같아요.
(82)
-그럼 '오늘은 이 부분을 써야 하는데, 어째 느낌이 안 오는데' 하는 경우는....
그냥 풍경묘사 같은 거라도 해요.(웃음). 뭐가 어찌 됐건 열 장은 씁니다. 그러기로 정했으니까.
(83)
<언더그라운드>를 완성하기까지는 실로 힘들었어요. 그 책을 씀으로써 제가 쓰는 글이 상당히 바뀌지 않았나 싶습니다.
(95)
인생에는 위험한 덫이 가득합니다. 섬뜩한 일이 수도 없이 일어나요.
(96)

트럼프는 고대 사제처럼 사람들의 무의식을 건드리는 요령을 체득했지 싶어요. 그리고 그런 데서는 트위터 같은, 개인대 개인의 디바이스가 강력한 무기가 되죠. 그가 구사하는 논리와 어휘는 상당히 반지성적이지만 그만큼 사람들이 지하에 안고 있는 부분을 매우 적략적으로 , 교묘하게 집어낼 수 있어요.
논리적인 세계, 집에 비유했을 때 1층의 세계가 나름의 힘을 발휘할 때는 잠잠하지만, 1층의 논리가 힘을 잃으면 지하가 지상으로 솟구쳐 버립니다. 물론 그것들이 전부 '나쁜 이야기'라고는 할 수 없지만, '좋은 이야기' '중층적인 이야기'보다 '나쁜 이야기' '단순한 이야기'가 사람들의 속마음에 한층 강렬하게 가닿는다는 건 부정할 수 없어요.
(101)
춥고 배고프고 불안하고..... 그런 때 이야기꾼이 나섭니다. 그 뛰어난 입담에 사람들은 흠뻑 빠져들어 슬퍼하다가, 설레다가, 화를 내다가, 소리 내어 웃다가 하면서 곧 배고픔과 공포, 추위를 잊어요.
스토리텔러란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103)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게 말투, 소설로 말하면 문체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신뢰감과 친밀감을 낳는 건 말투예요. 말투나 문체에 흡인력이 없으면 이야기가 성립하지 않죠. 물론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전에 말투에 매력이 없으면 사람들은 귀 기울여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보이스 스타일, 말투를 매우 중요시하죠. 제 소설은 너무 쉽게 읽힌다는 말을 곧잘 듣는데, 당연합니다. 그게 저의 '동굴 스타일'이니까.
최대한 쉬운 말로 최대한 어려운 이야기를 하자. 마른오징어처럼 몇 번이고 곱씹을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려 하죠.
(105)

다시 한번 확인해 두자면 제 문장은 기본적으로 리얼리즘입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비리얼리즘이요. 그런 분리가 처음부터 떡하니 전제되어 있어요. 리얼리즘 문제를 철저하게 구사하며 비리얼리즘 이야기를 펼치는 게 제 목적이니까요.
(117)
하나 더 말해두고 싶은 건, 저 자신은 성실하게 생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지극히 평범한 인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냥 보통 사람이죠. 적어도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일단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 속속 나타나요. 이야기가 자꾸 영문 모를 방향으로 가버리죠. 그런 자기 자신 속의 괴리, 분리 같은 것이 있습니다.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른바 '예술가 타입'은 아니에요. 생활력도 꽤 있고, 특별히 이상한 짓도 하지 않고, 보통 수준의 상식을 갖췄고, 아주 평범하고 비교적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죠. 하지만 책상 앞에 앉아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 제 안에서 도통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를 상황이 되어버립니다. 뭐, 제 소설의 주인공들도 대개 그런 경험을 하지만요(웃음)
(118)
아무리 훌륭한 서퍼도 좋은 파도가 오지 않으면 탈 수 없어요. 바로 지금이다,라는 적절한 포인트를 잡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죠.
(126)

긴 소설을 쓰다 보면 불가사의한 일이 자주 일어납니다. 제 힘이 미치지 않는 부분을 장소가 가진 힘이 처리해 주죠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는 일이 종종 일어나요. 우리는 그런 장소의 힘을 믿는 수밖에 없고요. 그런 생각이 듭니다.
(132)
어쨌거나 저는 구덩이나 우물 같은 것에 왠지 모르게 끌리나 봐요. 제가 봐도 희한하지만요.
(134)
내가 열렬히 갈망해도 도저히 가질 수 없는 것, 죽어서도 손에 넣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를 것을 지극히 손쉽게 쟁취하는 사람을 봤을 때 솟구치는 감정'이라고 우시카와가 말합니다.
(156)
(질투에 대한 설명)

그러니까 작가로서 재능이 있느냐고 한다면 그건 모르겠고 또 제게는 큰 상관이 없습니다. 그보다는 메시지를 받는 능력 혹은 자격이 있느냐가 훨씬 중요해요.
(169)
우리가 소설을 쓰는 일도 멀찍이 떨어져서 보면 썩 다르지 않은 것 같기도 해요. 그 사람들과.(171)(소설가도 점술가와 비슷하다는 말)
머리가 너무 좋은 사람은 소설을 쓸 수 없어요.(173)
3장 잠 못 이루는 밤은 뚱뚱한 우편배달부만큼 드물다.
호르헤 보르헤스라고 있죠. 그가 어느 날 시를 써서 친구 앞에서 읽어줬더니 "자네, 오 년 전에도 완전히 똑같은 시를 썼어."라는 지적을 받습니다. 보르헤스는 전에 그런 시를 썼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린 거죠. 이에 대해 보르헤스는 말합니다. "시인이 쓰고 싶어 하는 이야기는 평생 대여섯 가지밖에 없어. 우린 그걸 다른 형태로 반복할 뿐이지." 듣고 보면 정말 그렇다 싶어요. 결국 우리는 대여섯 가지 패턴을 죽을 때까지 반복하는 것뿐일지도 모른다고. 다만 몇 년 단위로 반복하는 사이 형태나 질은 점점 변해가죠. 넓이와 깊이도 달라지고요.(197)
네, 어쨌거나 책상과 종이, 펜만 있으면 할 수 있으니 이렇게 편한 일도 없죠. 누가 불평할 일도 없고, 뭐든 마음대로 쓸 수 있고 결과물을 두고 누가 비난하거나 칭찬하더라도 혼자 떠안으면 그만이에요. 깔끔해서 좋죠. 저는 그런 게 좋습니다.-무라카미 씨 성격에는 정마 잘 맞겠군요.
네, 그야말로 천직입니다. 전 오랫동안 혼자 있어도 외롭다고 느낄 때가 거의 없으니까요.
(208)
저는 지금 육십 대고, 지금까지 주인공으로 삼아온 인물은 거의 항상 삼십대죠. 그러면서 제법 나이 있는 사람을 조연으로 등장시키게 된 건, 저 자신이 그 나이를 실제로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215)
-글을 잘 쓰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나요?라는 물음에 '그건 어는 정도 타고나는 건데, 뭐, 어쨌든 열심히 하세요'라고 대답하셨던 것이 몹시 인상적이었는데(웃음).
(229)
사는 법을 가르칠 수 없는 것처럼, 글 쓰는 법을 가르치기도 어려워요.
(236)

-여자가 여자 자체로 존재하지 못하죠. 주인공이든 조역이든 이른바 주체성을 지니고 자아실현을 이루는 전개도 얼마든지 가능할 텐데, 늘 남자 주인공의 희생양처럼 되어버리는 경향이 있거든요.
(257)
예건대 저는 딱히 '이 세계는 신비롭고 환상적이다'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초자연적인 현상도 잘 믿지 않고, 괴담이나 귀신도 마찬가지죠. 점성술 같은 것에도 전혀 흥미가 없어요. 어쩌면 그런 비정합적인 현상이 어딘가에서 일어날지도 모르고 결코 그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나와는 크게 관계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굉장히 산문적이고 비스피리추얼 한 세계관이죠. 그런데 이야기를 쓸 때면 지극히 사실적으로 그려나가려고 하는데도 결과적으로는 그런 비정합적인 세계를 그리게 돼버립니다. 영문 모를 것이 속속 등장하죠. 이것이 '세계를 신비적, 환상적으로 생각' 하는 것과 '세계를 신비적, 환상적으로 그리는' 것은 별개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이해되시죠.
(271)

<책의 줄거리>
이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와 가와카미 미에코라는 소설가와의 대담집이다.
그녀가 질문하고 무라카미가 답한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녀와의 대담에서 자신이 어떻게 글을 써왔는지에 대해 담담하게 이야기 한다.
그는 거창한 문학 이론보다, 오히려 작가로서 살아가는 일상의 감각, 문장을 만들어내는 몸의 리듬, 사유의 시간 등에 대해 말한다.
그가 글쓰기에 대한 태도는 의외로 단순하다. 매일 일정한 분량을 써야하고, 쓸 것이 떠오르지 않아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정해놓은 규칙 속에서 뭐라도 쓴다. 그는 글쓰기를 '굴튀김을 하나하나 튀기듯' 해나가는 일이라고 말한다. 중요한 건 매일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것이다. 글은 기다리는 자의 것이고, 가장 좋은 파도는 언제 올지 모르니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는 글쓰기에 있어 문체를 무엇보다 중요시 한다. 문장이 진짜 울림을 가지려면 무의식의 세계에 담갔다가 다시 건져 올려야 한다고 말한다. 무의식의 세계에 담갔다가 다시 나온 문장은 표면적인 문장들과는 다른 깊이 있는 문장이 된다.
그는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읽히도록 글을 써야 한다고 말한다. 마른 오징어처럼 여러 번 곱씹을 수 있는 이야기, 깊은 맛이 나는 문장을 써야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장들을 그는 '동굴 스타일'이라 부른다. 춥고 배고프고 공포에 질린 사람들이 동굴 속에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이야기꾼의 이야기에 홀려 자기의 배고픔과 추위와 공포를 잊는다. 자신은 동굴 속 이야기꾼이라고.
그는 유명해지는 것을 즐기지 않으며 오랫동안 혼자 있어도 외로움을 잘 느끼지 않는다. 소설가로서의 자기의 삶에 만족하며 살고 있다.
소설가는 어딘가에서 일종의 능력을 부여받은 것이고 그런 면에서 소설가도 주술사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즉 그의 '받아들이는 능력'이 소설을 쓰게 만든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성실하고 규칙적인 평범한 보통사람이지만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 다른 사람이 되어버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자신이 평소에는 믿지 않는 신비적 환상적인 세계를 그리게 된다고 털어놓는다.

<책의 읽고 나서>
이 책을 통해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소설가가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는지,
어떤 생각으로 글을 쓰는지,
그리고 그의 문체와 작가로서의 태도를 알게 되었다.
읽다 보면 하루키는 단순히 ‘글을 잘 쓰는 작가’가 아니라
글을 통해 자신을 단련하고 세상을 탐구하는 사람이라는 걸 느낄 수 있다.
특히 그는 자신을 ‘능력을 부여받은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글을 잘 쓰는 것도 타고나는 재능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그렇다고 재능에만 기대지 않는다.
하루키는 언제나 글을 쓸 최적의 컨디션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며,
규칙적인 생활과 꾸준한 운동을 통해
늘 글을 쓸 준비가 되어 있는 작가다.
결국 그는 ‘재능’보다 ‘습관’으로 완성되는 작가다.
그의 글을 읽고 나면,
글쓰기란 단순한 창작 행위가 아니라
자신과의 꾸준한 싸움이자 수련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하루키의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작가로서의 내면을 이해하는 이 책이
더 깊은 영감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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