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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 다크> 무라카미 하루키 장편소설 , 깊은 갈라진 틈새 같은 곳은 정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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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ntent48591 2026. 1. 5.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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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 다크/ 무라카미 하루키 장편소설/ 권영주 옮김/ 비채

 

 

"왜 우리는 다들 각자 다른 인생을 살게 되는 걸까? 그러니까 너희 경우를 들어 말하자면, 한 부모한테 태어나서 한 집에서 자랐고 똑같이 여자애인데 어떻게 그렇게 다른 인격을 갖게 되는 거지? 어디에 그런 갈림길 같은 게 있는 걸까? 한 명은 수기신호의 깃발만한 비키니를 입고 풀사이드에서 매력적으로 그저 누워만 있고, 또 한 명은 학교 체육시간에 입는 수영복 같은 걸 입고 돌고래처럼 물 속을 헤엄쳐다니고..."

(20)

 

외모는 이렇다 할 특징이 없지만, 표정의 세부에서 강한 의지가 엿보인다. 아마도 마흔 살 전후. 최소한 얼국 주위에는 늘어진 살이 전혀 없다. 잘 정돈된 방 같은 인상을 주는 생김새다. 러브호텔에서 중국인 창부를 살 남자 같지 않다. 하물며 상대방을 부당하게 구타하고 옷가지를 빼앗아 갈 타입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로 그는 그렇게 했거니와, 그러지 않을 수 없었다.

(99)

 

"프로 뮤지션이 될거야?

 그는 고개를 내젓는다. "난 그런 재능은 없어. 음악을 하는 건 재미있지만, 그걸로 먹고살 순 없어. 어떤 걸 잘하는 것하고 어떤 걸 정말로 크리에이트하는 것 사이엔 크나큰 차이가 있단 말이지. 난 트롬본을 꽤 잘 분다고 생각해. 칭찬해주는 사람도 있고, 칭찬받으면 물론 기뻐. 하지만 그뿐이거든. 그래서 밴드는 이달 말까지만 하고 음악에서 손을 뗕까 해."

"어떤걸 정말로 크리에이트 한다는 건 구체적으로 무슨 뜻이야?"

"그러게.....음악을 마음 속 깊이 전달하는 걸로써 자기 몸도 물리적으로 어느 정도 슥 이동하고, 그와 동시에 듣는 사람의 몸도 물리적으로 슥 이동하는, 그런 공유적인 상태를 낳는 거야. 아마도."

(113)

 

두 세계를 가르는 벽은 사실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말이야. 있어도 종이로 만든 얄팍한 벽일지도 모른다. 몸을 가볍게 기댄 순간 쑥 빠져서 저쪽으로 쓰러질지도 모른다. 아니, 우리 자신 안에 저쪽에 벌써 몰래 숨어들어와 있는데 모르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말로 설명하려니까 쉽지 않지만."

(117)

 

 다카하시는 말을 잇는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아미 이런 걸 거야. 한 인간이, 그게 어떤 인간이든 간에. 거대한 문어 같은 동물한테 붙들려서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 그건 어떤 이유를 갖다붙이든 참 가슴 먹먹한 광경인 거야."

(119)

 

 결단만 내리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육체를 떠나 실체를 남겨두고, 질량을 갖지 않는 관념적 시점이 되면 그만이다. 그러면 어떤 벽도 통과할 수 있다. 어떤 심연도 건너뛸 수 있다. 실제로 우리는 순수한 하나의 점이 되어 두 세계를 가르는 텔레비젼 화면을 빠져나온다. 이쪽 세계에서 저쪽 세계로 이동한다. 벽을 통과하고 심연을 건너뛸 때, 세계는 크게 일그러지고 찢어지고 무너져 일단 소실된다. 모든 게 불순물이 없는 고운 먼지가 되어 사방으로 흩어진다. 그뒤 세계가 재구축된다. 새로운 실체가 우리를 둘러싼다. 모든 것은 눈 한 번 깜박하는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130)

 

.....어쨌거나 옛날부터 남한테 비밀 이야기를 듣는 일이 많았어. 남녀를 불문하고, 별로 친하지도 않은 상대방이, 가끔은 그때 처음 만난 상대방이, 엄청난 마음속 비밀을 털어놓고 그러지 뭐야. 왜 그런 걸까? 나라고 그런 걸 듣고 싶은 것도 아닌데."

(145)

 

 마리는 고개를 흔든다. "약이랑 점술이랑 다이어트-언니의 경우, 아무도 그걸 막지 못해."

(147)

 

 "이런 식으로 생각해보면 어떨가 싶은데. 그러니까 너희 언니는 어딘지는 몰라도 또 다른 '알파빌' 같은 곳에 있으면서 누군가한테 무의미한 폭력을 당하고 있어. 그래서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면서 눈에 안보이는 피를 흘리고 있어."

 "비유적인 의미로?"

 "아마." 다카하시는 말한다.

(156)

 

 "마리, 우리가 서 있는 지면은 말이지. 단단해 보이지만 조금만 무슨 일이 있으면 밑이 쑥 꺼지고 그래. 한번 꺼지면 그걸로 끝장이야. 두 번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지 못해. 저 아래 어둑어둑한 세계에서 혼자 살아가는 수밖에 없어."

(189)

 

 "언니가 두 달쯤 전에 '지금부터 얼마 동안 자야겠다'라고 말했어요. 저녁 먹다가 가족 앞에서 선언한 거예요. 그런 말을 들어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어요. 아직 7시였지만 언니는 늘 잠이 불규칙했기 때문에 특별히 놀랄 일도 아니었거든요. 우리는 '잘 자'라고 했어요. 언니는 식사에는 손을 거의 안 대고 자기 방으로 가서 침대에 누웠어요. 그 이래로 계속 잠만 자요.

"계속?"

"네" 마리는 말한다.

(192)

 

 어쨌거나 밤중에 그 방에서 일어났던 일련의 기묘한 사건은 이제 완전히 종결된 듯 보인다. 순환이 얼추 완성되고, 이변은 남김없이 회수되고, 곤혹은 덮개로 가려지고, 사물은 원상태로 히복된 것 같다. 우리 주위에서 원인과 결과는 손을 잡고, 종합과 해체는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결국 모든 것이 손이 닿지 않는, 깊은 갈라진 틈새 같은 곳에서 벌어졌던 일이다. 한밤중부터 날이 밝을 때까지 그런 곳이 어딘가에 은밀히 암흑의 입구를 연다. 그곳은 우리의 원리가 아무런 효력을 갖지 못하는 장소다. 언제 어디서 심연이 사람을 집어삼킬지, 언제 어디서 토해낼지 아무도 예견하지 못한다.

(210)

 

 

<책을 읽고 나서>

[애프터 다크]는 성격이 매우 다른 두 자매 에리와 마리에게 PM 11:56에서 다음날 AM 06:52까지 일어난 이야기다.

언니 에리는 가족들에게 '얼마동안 잠을 자야겠다'고 선언하고는 방으로 들어가 잠을 잔지 벌써 두달째이고, 동생 마리는 집에 들어가기 싫어 아주 늦은 밤 도시 한가운데의 펍에 있다가 언니의 친구인 다카하시를 우연히 만나게 되고 그의 소개로 알파빌이란 모텔에서 같은 또래인 중국인 아가씨를 구해주는데 협조하게 된다. 

잠을 자는 언니는 이쪽 세상에서 자다가 TV 저쪽의 어떤 세게로 가게 되고 또다시 이쪽 세계로 돌아오는 경험을 한다.

긴 줄거리는 그게  다이다.

 두 자매는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지만 언니의 친구 다카하시에게서 예전에 언니 에리가 동생과 좀 더 친해지길 바랬다는 얘기를 듣고 집으로 가 언니의 침대에서 언니와 입을 맞추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과 잠들었던 언니 에리가 움찔하는 장면으로 이 소설은 끝나게 된다. 

 

 먼저,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소설 중간중간에 나오는 음악, 나에게는 너무도 낯선 재즈 음악과 클래식 오케스트라 연주곡 등을 틀어놓고 들으면서 이 책을 읽었다. 음, 하루키씨가 이런 음악을 즐겨 듣는구나~하면서.

 소설 속에 나오는 재즈와 클래식 연주곡을 들으면서 소설을 읽는 일, 신선한 경험이었다.

 사실 주인공인 마리와 에리가 한 밤 동안 겪은 이야기에는 그리 큰 흥미를 느끼지는 못했다.

 [애프너 다크]는 어떤 특이한 사건이나 줄거리의 재미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구조가 아니었다.

하루키씨는 이 세상에는 어둠 속에 존재하는 '틈' 같은 게 있다고, 인간은 조금만 비틀거리면 아무도 모르는 그 '틈' 같은 것에 빠질 수 있다고. 그 '틈'은  우리가 보는 세상의 이치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기이한 세계이며 언제 어떻게 우리가 빠질 지 모른다고 경고해 주고 있는 것 같다.

하루키씨의 소설들 속에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과 그 현실과 닮은 또 하나의 현실, 두개의 세계가 공존하는 모습이 자주 나오는데 이건 단지 하루키씨의 상상 속에서 나오는 것일까? 

나는 그게 제일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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